
8,90년대 해태 타이거즈 1번타자로 외야 수비의 최고라 불리우던 선수. 타이거즈 역사상 유일한 신인왕. 바로 이순철 선수입니다. 타이거즈의 신인왕 그리고 8번의 우승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85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순철 선수는 .304의 타율과 12홈런 31도루라는 매우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하게 됩니다. 다음해인 86년도에는 타율 .257 14홈런 19도루를 기록하며 2년차 징크스를 깨고 주전으로 올라섰으며, 88년에는 가장 많은 108경기에 출장하며 .313의 타율에 13홈런 58도루를 해내며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갈아치우면서도 홈런 8위에 오르며, 호타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결승타를 치는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리..

선수시절에는 해결사로 감독시기에는 야왕으로 3루수 부문에서 역대 올스타전 11차례 참가했던 선수. 한대화 선수입니다. 해결사 한대화 한대화 선수는 대전 출신으로 동국대 재학 시절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좌측 폴대를 맞추는 3점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를 이끌게 됩니다. 이때부터 한대화 선수는 해결사라는 수식어를 달게 됩니다. OB에서 타이거즈까지 한대화 선수는 83년도에 당시 대전을 연고지로 사용하던 OB에 입단하게 됩니다. 프로 첫 경기에서 3점홈런을 치며 등장하지만 아마추어 때와는 다르게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합니다.(타율 0.272에 5홈런) 게다가 이듬해인 84년과 85년에는 오히려 타율이 더 떨어지며, 해결사라는 이미..

드디어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어린이날인 5일 두산 베어스 대 LG 트윈스의 경기를 시작으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개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KBO리그는 1980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처음으로 시범경기가 취소됐으며, 무관중으로 시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020년도 재편성된 일정 및 변경된 사항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1982년에 창설된 한국의 프로야구리그로 리그 명칭은 2014년까지 한국야구선수권대회였으나, 2015년부터 리그 브랜드 아이덴티티 통합을 위해 KBO 리그라는 브랜드로 재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주관 단체는 한국야구위원회 (KBO 사무국)으로 1982년 프로스포츠로 탄생한 이래..

연습생 신화, 영원한 4번타자, 이글스의 프랜차이저 스타 장종훈 선수입니다. 고졸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 세광 중고등학교를 거쳐 86년도에 신생 팀 빙그레 이글스에 연봉 3백만원의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장종훈 선수는 연습생으로 스스로의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 실력을 키워 나갑니다. 다음해인 87년도에 2군에서 계속 훈련에 매진하며 기량을 키워나가던 중, 1987년 4월 주전 유격수의 부상으로 1군 무대를 밟게 됩니다. 그 해 2할 7푼의 타율과 8홈런을 기록하게 되고, 88년부터는 풀타임으로 출전하면서 각 타격부분에서 10위 이내에 들게 됩니다. 이듬해인 89년에는 0.254 홈런 18개 타점 46개를 기록하게 됩니다. 4번타자 장종훈 90년부터 장종훈 선수의 본격적인 타격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 이름보다 코리안 특급으로 불리웠던 선수 박찬호 선수입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선수로 불려지고 있으며, IMF 시기에 좋은 성적으로 희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의 꿈 공주고 시절 박찬호 선수는 MLB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한다. 한양대 입학 후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등과 함께 '황금의 92학번' 중 한명으로 불리었으나, 다른 선수들에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양대 2학년 시절이었던 1993년 미국 버펄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통해 메이저 구단들과 계약 얘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93년도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 선수는 2년동안 AA, AAA, MLB 등을 오르 내리다가, 96년도에 스프링캠프 때 두각..

아마추어 때부터 외야수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30-30클럽과 호타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 리틀 쿠바 박재홍 선수입니다. 데뷔 첫 해 30-30 등록 광주제일고를 나온 박재홍 선수는 92년 신인지명에서 광주 연고 팀인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 후 연대 사회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다시 해태로 입단할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지명권과 당시 현대의 투수 최상덕과 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입단 첫 해인 96년 30개의 홈런과 36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해당 시즌에 홈런왕, 타점왕 그리고 한국 최초 30-30클럽에 가입하게 됩니다. 당시 30-30 클럽은 일간 신문 메인을 장식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기..

우리들의 영원한 법규형, MLB 두 개의 우승반지의 주인공, 핵잠수함 BK 김병현 선수입니다. MLB 최고의 마구 광주일고, 성균관대를 거쳐 아마추어인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받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가게 됩니다. 첫해인 99년 특유의 마구로 마이너리그 석달만에 메이저리그로 콜업하고, 첫 경기에서 뉴욕 메츠의 중심타선을 삼자범퇴로 막아 훌륭한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첫 해 성적은 방어율 4.61. Kim tosses first pitch | 04/03/2018 Former Arizona Diamondbacks closer Byung-Hyun Kim tosses out the first pitch prior to the D-backs taking on the Do..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한국프로야구 최초 기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 주인공 헐크 이만수 선수다. 프로야구 1호의 주인공 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삼성에 입단하였으며, MBC 청룡과의 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을 기록합니다. 당시 프로야구는 인기가 가히 최고였으며, 어린이 클럽에 가입하면 선수의 사인볼 등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만수 선수의 사인볼은 특히 인기가 많았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포수 부문에서 5년 연속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고, 특히 1984년에는 타격, 홈런, 타점에서 1위를 차지하여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위해 내부에서 상대 선수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야구에는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종범신 그리고 한 명은 오늘 얘기할 양신, 기록의 사나이, 꾸준함의 대명사 양준혁 선수입니다. 괴물 신인의 등장 투수로 야구를 시작한 양준혁은 어릴 때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하게 되고, 이후 타자로써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대구상고 영남대를 거쳐 프로 데뷔 전 지명과 관련된 논란을 거치면서, 삼성에 입단합니다. 93년 데뷔 첫해 괴물과 같은 성적(타율 0.341, 23 홈런, 90타점)을 거두며, 그해 타격왕과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하게 됩니다. 이듬해 3할 홈런 19개 성적을 올리며, 2년차 징크스를 이겨냅니다. 이후 95년부터 98년까지 삼성에서 3할 이상의 타율과 홈런 20개 이상의 성적을 꾸준하게 올리고, 96년에는 20-20 클럽에..

타이거즈 영구결번 7번 선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유행어의 주인공 이종범 선수입니다. 신인 해태 타이거즈 / 이종범 야구천재, 종범신, 바람의 아들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종범 선수. 이종범 선수는 뭉쳐야찬다 출연 당시에 본래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용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연습해 야구를 오른손으로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정상급 선수가 될 것이라고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93년도에 1차 지명으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됩니다. 데뷔 시즌 준수한 성적(타율 0.280, 득점 1위, 안타, 도루 2위)을 거두게 되었으나, 신인왕은 당시 삼성의 양신 양준혁이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리고 94년 괴물과 같은 성적(타율 0.393, 홈런19, 득점 113, 도루 84)을 거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