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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는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종범신 그리고 한 명은 오늘 얘기할 양신, 기록의 사나이, 꾸준함의 대명사 양준혁 선수입니다.

괴물 신인의 등장

투수로 야구를 시작한 양준혁은 어릴 때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하게 되고, 이후 타자로써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대구상고 영남대를 거쳐 프로 데뷔 전 지명과 관련된 논란을 거치면서, 삼성에 입단합니다.

93년 데뷔 첫해 괴물과 같은 성적(타율 0.341, 23 홈런, 90타점)을 거두며, 그해 타격왕과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하게 됩니다. 이듬해 3할 홈런 19개 성적을 올리며, 2년차 징크스를 이겨냅니다.

이후 95년부터 98년까지 삼성에서 3할 이상의 타율과 홈런 20개 이상의 성적을 꾸준하게 올리고, 96년에는 20-20 클럽에 가입, 96년 98년도에는 타격왕에 오르게 됩니다.

해태를 거쳐 LG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99년도 당시 강력한 마무리를 원했던 구단이 타이거즈 임창용 선수와 트레이드 됩니다.

양준혁 선수 에세이를 보면 삼성을 떠나기 싫었으나,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의 설득으로 1년간 타이거즈와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급작스러운 트레이드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성적(타율. 323, 홈런 32개, 안타 160개)을 거두고, 이듬해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되고, 두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특히 2001년에는 개인 통산 가장 높은 타율(.355)을 거두게 되고, 타격왕과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됩니다.

기록의 사나이, 다시 친정으로

2001년 종료 후 FA가 된 양준혁은 삼성 김응용 감독의 부름으로 삼성으로 다시 오게 됩니다.

복귀한 첫해 02년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으나, 데뷔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게 된 양준혁은, 이후 은퇴 전까지 삼성 주전 클린업으로 삼성 왕조의 축을 맡게 됩니다.

05, 08년도 잠시 주춤하기도 하였지만 최초 2000안타, 최다안타, 최다 홈런 등 타격과 관련된 전체 지표 부분에서 계속적으로 기록을 써 내려갔습니다.

10년 개막 라인업에 포함되었으나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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