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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영구결번 7번 선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유행어의 주인공 이종범 선수입니다.

신인 해태 타이거즈 / 이종범

타이거즈홈페이지

야구천재, 종범신, 바람의 아들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종범 선수.

이종범 선수는 뭉쳐야찬다 출연 당시에 본래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용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연습해 야구를 오른손으로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정상급 선수가 될 것이라고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93년도에 1차 지명으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됩니다. 데뷔 시즌 준수한 성적(타율 0.280, 득점 1위, 안타, 도루 2위)을 거두게 되었으나, 신인왕은 당시 삼성의 양신 양준혁이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리고 94년 괴물과 같은 성적(타율 0.393, 홈런19, 득점 113, 도루 84)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3년 연속 도루 1위, 97년에는 30-30 클럽 가입하는 등의 준수한 성적을 보여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97년에 홈런보다는 타율을 더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1회에 1번 타자로 나서서의 홈런을 볼 때면 그 경기 자체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97년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 우승을 하며,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와 해당 팀의 상황과 맞물리며,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일본으로 / 이종범

일본에서의 전반적인 성적은 전성기 때만큼의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첫해 초반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성적이 떨어지면서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더욱이 성적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팔꿈치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아웃 되게 됩니다.

첫해 성적은 67게임 .283의 타율과 10 홈런 18 도루 OPS .873.

이후 3년 동안 주니치에서 활약하나, 만족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마지막 해인 2001년도에는 8 경기만 출전하였으며, 그 해를 마지막으로 국내로 복귀하게 됩니다.

다시 타이거즈로 / 이종범

국내복귀 이후 전성기 때와 같은 성적은 아니나, 01-05 시즌까지 타율 3할, 10~20개의 홈런, 30~50 도루를 안팎을 꾸준히 찍어주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05 시즌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페이스가 떨어진 성적을 보여 줬으나, 09년도 타이거즈의 우승에 한 축이 되었으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타이거즈의 상징적인 존재로 은퇴 전년도 LG전 관람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종범 선수가 대타로 나왔을 때 관중석의 분위기는 어마어마 했습니다.

은퇴와 관련된 얘기는 당시 여러가지 말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아쉬웠지만, 12년도 시범경기 종료 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 선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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