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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국민타자 혹은 홈런타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이승엽 선수다.

유망투수에서 타자로

 

홈런타자 이승엽

중앙초등학교 4학년에 야구를 시작한 이승엽은 원래 투수로 경북고 재학 시절에는 청룡기에서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하였고, 특히 노히트 노런도 기록한 선수였다.

원래는 한양대 입학 예정이었으나, 수능 점수로 인해 대학 진학이 어려워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은 앞서 말한 대로 투수로 입단하게 되는데,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게 된다.

당시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타격코치는 이승엽의 타격 재능을 알아보고, 1루수로 시합에 나가게 된다. 입단 첫 해 첫 시즌 타율 .285에 홈런 13개 성적을 냈지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한다. 당시 신인왕은 이동수.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2003년 이후 FA가 된 이승엽은 당연히 미국으로 진출하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MLB 구단들과의 협상이 잘 되지 않아 일본 치바 롯데 마린즈로 진출하게 된다.

첫해 14홈런 50타점 타율 .240의 평범한 성적으로 아쉬움 보인 이승엽은 다음 해 노력을 통해 30홈런 82타점 타율 .260까지 성적을 올린다.

2006년 치바 롯데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1년을 계약 하며 팀을 옮긴다.

2007년도 성적은 41홈런 108타점 타율 .323. 당해 최고 성적을 거둔 이승엽은 요미우리와 4년 30억엔 초대박 계약을 한다.

그러나 4년간 아쉬운 성적을 내며, 먹튀라는 오명을 쓰고, 요미우리에서 방출 당한다. 이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11년도에 팀을 이전하며,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이승엽이라는 이름의 가치는 보여주지는 못했다.

국내 복귀 그 후

이승엽 선수의 복귀는 많은 팬들이 반가워 했고, KBO의 흥행을 더욱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성기만큼의 활약은 아니지만, 뛰어난 실력으로 매번 KBO의 새 역사를 써 나갔다. 2017년  10월 3일 대구 넥센전 공식은퇴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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