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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 이름보다 코리안 특급으로 불리웠던 선수 박찬호 선수입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선수로 불려지고 있으며, IMF 시기에 좋은 성적으로 희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의 꿈

 

 

공주고 시절 박찬호 선수는 MLB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한다. 한양대 입학 후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등과 함께 '황금의 92학번' 중 한명으로 불리었으나, 다른 선수들에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양대 2학년 시절이었던 1993년 미국 버펄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통해 메이저 구단들과 계약 얘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93년도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 선수는 2년동안 AA, AAA, MLB 등을 오르 내리다가, 96년도에 스프링캠프 때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해 개막 엔트리에 나서면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게 됩니다.

96년 4월 구원투수로 등판, 그 경기의 구원승을 시작으로 5승 5패(방어율:3.64)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이듬해 97년 5선발로 첫 번째 등판한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되었으나, 이후 파죽지세로 성적을 내게 되며, 두차례 완투승을 포함 14승을 거두면서 팀내 최고 투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98년도에는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달의 선수에도 선발되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됩니다. 특히 방콕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다음해인 99년도에는 년초부터 한이닝에 두개의 만루홈런(한만두)를 맞고, 난투극으로 인한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한 중징계를 당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말에는 7연승은 하며 13승(방어율:5.23)으로 마감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커리어하이를 찍게 되는데, 완봉승 및 개인 첫 홈런 등을 포함해 18승 10패(방어율:3.27)로 빼어난 성적을 거두게 된다. 01년도에도 초반부터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전년도 성적보다 높을것이라 예상했으나, 시즌 중 허리통증을 호소하면서 15승 11패 ERA 3.50로 마무리 하였다.  FA를 획득한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하게 됩니다. 

FA계약, 아쉬운 성적

02년도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첫 해 햄스트링과 허리부상이 겹치면서 145이닝만 소화했고, 다음해는 30이닝만 소화 하는 등 거액 FA 선수로써 아쉬운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05년도 어려움 속에서도 100승을 거두게 되지만, 7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되게 됩니다. 05년 성적은 12승 8패 방어율 - 5.74. 이후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등을 거치면서 2010년도에 통산 124승을 거둔 후 미국에서의 야구경력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11년도에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게 되었으나, 그 해 햄스트링 부상으로 다음해인 2012년도에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박찬호 선수의 한국프로야구 등판은 모든 야구팬들을 설레게 했고, 많은 팬들은 그를 보기위해 구장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4월 국내 첫승을 시작으로 한해동안 120이닝이상 소화 하였으며,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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